꽃들은 그녀의 슬픔을 알아챌까 | ||
[매일경제 2007-04-12 16:32] | ||
음악은 혁명의 후유증으로 앙상해진 쿠바의 거리를 위로했다. 시가 연기가 자욱한 허름한 도시 한 모퉁이에서 흘러나오는 애잔한 선율은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린 영혼을 달랬다. 고단한 세월의 흔적이 깊이 파인 얼굴로 인생의 진실과 아름다움을 노래한 늙은 연주자들. 1999년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주인공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다. 영화에 출연했던 다섯 멤버 중 세 명은 이미 세상을 떠나 전설이 됐다. 유일한 여성 멤버이자 '쿠바 음악의 퍼스트 레이디'로 불리는 오마라 포르투온도(77)가 홀로 한국을 찾는다. 2005년 내한 공연에서 그는 다음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아리랑을 부르겠다고 말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음달 1일 오후 7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발라드와 볼레로, 재즈 장르를 넘나드는 풍부한 음역으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추억을 노래할 예정이다. 체 게바라와 시가, 야구로 기억되는 나라 쿠바의 음악가 집단을 일컫는 용어가 바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이다. '환영받는 사교클럽'이란 뜻으로 쿠바 음악계 백전노장들로 이뤄졌다. 이들이 혼을 바쳐 부르는 노래는 때론 애수가 짙고, 때론 열정적이며 유쾌하다. 1996년 부에나 비스타는 야심찬 음반 녹음에 들어간다. 프로듀서는 미국 영화음악 작곡가이자 연주자, 보컬리스트로 활약하는 라이 쿠더. 그는 음악 그 자체를 삶으로 체득해온 콤파이 세군도, 이브라함 페레르, 오마라 포르투온도 등 쿠바 음악계 베테랑들이 뿜어내는 열정과 흥겨움을 앨범 속에 담았다. 비슷한 시기에 세계를 휩쓴 라틴 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울림을 준 음반으로 전 세계에 300만장이 팔려나갔다. 이제 부에나 비스타 쇼셜 클럽의 홍일점인 오마라가 부에나 비스타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카바레 댄서로 출발해 가수가 됐다. 1952년 4인조 여성 보컬 밴드를 결성해 15년간 활동했다. 첫 솔로 데뷔 앨범은 '검은 마법'(1959)으로 쿠바 음악과 미국 재즈에 양다리를 걸친 실험성 강한 음반이었다. 1961년 미국 마이애미 호텔에서 노래하던 그녀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 쿠바로 돌아왔다. 당시 가수들은 사탕수수를 수확하는 일꾼들을 독려하기 위해 들판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회상한다. 40년 넘는 노래 인생은 이브라임 페레르와 함께 '실렌시오(Silencio)'를 녹음하면서 절정에 오른다. 두 사람이 노래하는 장면은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에도 등장한다. 노래 가사 중 '그녀의 정원에 핀 꽃들이 그녀의 슬픔을 알아채면 다들 바로 말라 비틀어져 죽어버린다'는 대목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오자 오마라 눈에서 눈물이 솟구친다. 이브라임 페레르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의 눈물을 가볍게 훔쳐주는 장면은 쿠바 음악의 낭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02)563-7110 [전지현 기자] < Copyright ⓒ 매일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