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공연] 제임스 블런트 내한공연│진국 맞선남!
CF에서 어떤 음악을 알게 된다는 건 맞선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다. 단시간에 가장 매력적인 부분만 잘라서 들이민다는 점, 그리고 때로는 알게 된 경로의 식상함 때문에 상대방의 가치를 제대로 못 알아보는 사고가 발생한다는 부분에서 그렇다. 제임스 블런트의 ‘You’re Beautiful’은 선으로 만난 건실한 남자 같은 노래다. 광고 배경 음악으로 쓰였던 이 노래의 클라이맥스만 100번 쯤 반복해서 들을 때는 그만 커피잔을 놓고 핸드백을 챙겨 일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귀를 씻고서 다시 들어보면 역시, 이만하기도 쉽지 않게 쓸 만한 팝 넘버가 맞다. 이 노래가 수록된 블런트의 2004년 앨범 은 ‘영국에서 가장 빨리 팔린 데뷔 음반’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소란으로 돌아감’ 이라는 제목에 걸맞지 않게 차분하고 서정적인, 그리고 비장한 스타일이 앨범 전체에 흐르며 ‘High’ 라던가 ‘Good bye My Lover’ 같은 곡에서 빛을 발한다. 그리고 전쟁의 처참함에 대한 노래인 마지막 노래 ‘No Bravery’에서 블런트는 자신의 전력을 영리하게 노출한다. 그는 영국 육군 장교 출신이다.
코소보 내전에 나토 평화 유지군으로 파견되었던 적까지 있다고 하지만, 제임스 블런트가 그 목소리로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건 도무지 상상하기 어렵다. 블런트는 가장 큰 볼륨으로 노래할 때조차 속삭인다. 가성이 많이 섞인 콧소리는 상당한 고음을 내며, 자주 꺾인다. 지난주에 소개한 제이슨 므라즈의 음색이 삶아서 까놓은 계란처럼 매끄럽다면 블런트의 목소리에는 흠이 많이 패이고 잔금이 가 있다. 비슷하게 예민한 데미언 라이스의 음색이 연약하고 가느다란 쪽이라면, 블런트는 번지고 흔들린다. 까뒤집힐 때는 스웨이드의 브렛 앤더슨 느낌도 들지만 그보다는 사색적이다. 우울하지만, 엘리엇 스미스만큼 다리에 추를 매달고 바닥으로 침잠하게 하는 우울함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달콤함 덕분으로 떠오르고, 견디게 한다. 하긴 그 자신도 전쟁에서 죽거나 미치지 않고 살아남아 건반 앞에 앉아서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P.S. 제이슨 므라즈와 제임스 블런트가 오게 됐으니, 이제 존 메이어까지 내한해서 ‘3J’ 트리플을 완성해주었으면 하는 소망도 생긴다. 하여간 괜찮은 공연이 많아서 즐겁기도, 또 괴롭기도 한 올해다.
황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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