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황량한 아일랜드 더블린 거리. 홀로 아이를 키우는 가난한 이민자 출신 여자는 애인에게 배신당한 거리 악사의 슬픈 선율에 마음을 빼앗긴다. 더 이상 잃을 게 없어 보이는 남녀는 음악을 통해 서로에게 의지하고 사랑을 키워 나간다. 여자는 피아노를 치고 남자는 기타를 치며 진심과 열정으로 만든 음악은 세상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지난해 겨울 저예산(제작비 16만달러)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1400만달러를 벌어들인 인디 영화 `원스(Once)`의 줄거리다. 국내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관객 20만명을 동원한 이 영화 주인공들은 흥행에도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사랑도 얻었다. 영화처럼 실제 연인으로 발전한 아일랜드 인디밴드 `더 프레임즈` 리드 보컬인 글렌 한사드(38)와 첼코 출신 피아니스트 마르케타 이글로바(20)는 이미 8년 전에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내년 1월 17~18일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앞두고 이메일 인터뷰에 응한 한사드는 "이글로바 아버지가 내 밴드의 열렬 팬이어서 8년 전 체코 축제에 초청했고 3개월 동안 그녀의 집에 머물며 작곡을 했다"며 "12세 소녀의 피아노 소리가 좋아서 친해졌고 공연에도 초청했으며 영화에도 출연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는 키스신 한 번 없었지만 두 사람은 전 세계 음악여행을 함께 다니며 정이 들었다. 지난 2월 제80회 아카데미상 최우수 주제가상을 수상한 날 사랑을 확인했고 18세 나이 차이를 극복하며 연인이 됐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을 때 우리 두 사람은 거대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어요. 같은 경험을 한 후 우리의 인생도 함께 변했어요. 소중한 순간마다 마르케타가 제 옆에 있어 감사해요. 우리는 서로를 지지해 주죠. 그녀는 내게 긍정적인 힘을 줬고 작곡과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줬어요."
그는 영화처럼 더블린의 거리악사로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학교에서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주제곡 `폴링 슬롤리(Falling Slowly)`는 전 세계에서 80만장 이상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18년 동안 거리에서 연주하며 음악을 배웠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고 그들의 진심을 보는 눈이 생겼어요. 그렇게 만난 사람들의 인생을 선율에 담았어요. 음악에는 진실이 담겨 있어야 해요. 비록 진실이 추하더라도 받아들여야 해요. 거짓된 음악으로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없어요."
더블린의 작은 예술영화관 상영을 꿈꿨던 그는 이제 뉴욕 거리도 자유롭게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스타가 됐다.
"DVD 제작비라도 건지려 했는데 전 세계 투어까지 하게 돼 기뻐요. 이국땅에서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으니 정말 모든 게 변했다는 것을 느껴요. 하지만 이 명성에 너무 익숙해지면 안 되겠죠. 우린 연예인이 아니라 연주자니까요.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음악을 하게 되면 실패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잖아요. 우리는 음악이 좋아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영화 인기를 업고 그룹명 `스웰시즌`으로 공연 중인 이들은 첫 한국 방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영화 배경음악을 들려줄 예정이다.
이글로바는 "미국 투어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났는데 우리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고 들었다"며 "한국에 대해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밖에 아는 게 없지만 무척 설렌다"고 밝혔다. (02)563-0595
[전지현 기자 / 김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