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곡 부르길 거부한 남자
앨범 '리메이크'의 조규찬
"제작사 부탁에 넣었지만 이은미·최진실 이름에 묻어가는건 도의 어긋나"
가수 겸 작곡가
조규찬(39)이 4년 만에 발표한 정규 앨범은 '리메이크(remake)'. 타이틀곡은 이은미가 부른 노래를 새롭게 편곡한 '애인 있어요'다. 각종 음원 차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곡이다.
한데 지금껏 그 누구도 조규찬이 방송이나 공연장에서 이 타이틀곡을 부르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유가 대체 뭘까?
12일 서울 대학로 신연아트홀. 지난 2월부터 '클로즈 투 유(close to you)'라는 이름으로 콘서트를 열고 있는 조규찬을 만났다. 그는 "적어도 앞으로도 10년 동안은 그 노래를 부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조규찬은 사실 리메이크 앨범을 낼 마음이 없었다고 했다. '원치 않았던 공백' 기간이 무려 4년. 소속사는 기존 인기 가요를 재해석해서 앨범을 만들자는 '타협'을 제안했고, 고민 끝에 '리메이크라도 순수한 창작곡처럼 들리도록 만들겠다'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강수지의 '흩어진 나날들'을 보사노바풍으로 편곡하고, 나미의 '인디언 인형처럼'을 아카펠라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노래로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적어도 리메이크 앨범에 담을 노래라면 발표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소구력을 잃지 않은 곡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이은미씨의 '애인 있어요'를 좋아했지만 발표한 지 얼마 안 된 노래였어요. 이런 노래를 리메이크하는 건 그야말로 원곡 인기에 묻어가려는 몸짓인 거죠."
마지막까지 녹음을 미루다가 앨범에 넣었다. 한데 앨범을 내자마자 고(故) 탤런트
최진실의 사망 소식이 들렸다. 그녀가 출연했던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 삽입됐던 노래인데다 최진실이 살아생전 가장 좋아했던 노래로 알려지면서 방송에선 너도나도 '애인 있어요'를 틀어댔다. 조규찬은 "이런 상황에서 나까지 방송에 나와 리메이크곡을 부른다는 건 도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오만하다고 욕할지 모르지만 부르지 않기로 한 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14일까지 열렸던 소극장 공연에서도 조규찬은 새로 발표한 노래 중 '흩어진 나날들'만 불렀다. 타이틀곡을 듣고 싶어 일부러 찾아온 팬들이라면 섭섭해하지 않을까. 그는 "적어도 제 공연을 찾아오는 분들이라면 내 고집을 이해해줄 거라 믿는다"고 잘라 말했다.
예민하기로 정평이 난 그다. 예전엔 반주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공연장에서조차 노래를 부르지 않고 서서 버틴 적도 있었다. 조규찬은 "어릴 땐 가끔 그랬었다"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매니저들 사이에서 '싸가지 없는 가수'로 소문난 것도 그런 이유였죠. 하지만 제가 예민한 만큼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다듬은 무대를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관객이 그런 제 모습을 보고 불편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건 나이를 먹으면서 깨달았고요."(웃음)
까다로운 조규찬의 새 공연은 오는 4월 24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다. '이 시대의 아름다운 싱어송 라이터' 공연 시리즈의 일환. 리듬 악기를 강조해 새롭게 편곡한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02)563-0595
송혜진 기자
enave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