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25
[중앙일보 이영희] 상상만으로도 좋다. 햇살 따뜻한 봄날 오후, 도시락을 싸들고 친구들과 피크닉을 나선다. 살랑살랑 바람 불어오는 호숫가 잔디밭, 그 풍경 위로 이승환의 '좋은 날' '기다린 날도 지워진 날도' 등의 노래가 깔린다면? 이거, '백퍼센트'다.
가수 이승환(44·사진)도 이런 풍경을 꿈꿨다. “탁 트인 공간에서 자연과 어우러지는 공연을 해보고 싶었어요. 지난해 '그랜드민트 페스티벌'에서 '봄여름가을겨울' 형들의 깜짝 게스트로 야외 무대에 선 적이 있는데 가수도 관객도 에너지가 다르더라구요. 그날부터 봄이 오기만 기다렸죠.” 5월 16~17일 오후 6시 서울 올림픽공원 88호수 수변무대에서 야외 콘서트를 열게 된 이유다. '살랑살랑 봄날의 호숫가 피크닉'이라는 제목을 단 이번 콘서트는 지난해 말부터 계속되고 있는 '이승환 오리지널' 투어의 중간에 끼어든 작은 소품같은 공연이다. 그런 만큼 이승환의 대표 발라드곡을 '오리지널 버전'으로 들려주는 것은 물론, 야외 무대에 걸맞는 양념을 살짝 첨가했다. “호숫가에서 내내 발라드만 들으면 졸리잖아요. 다같이 뛰며 근심을 날려버리는 '환장 타임'도 물론 준비했습니다.” 전제덕의 하모니카와 하림의 민속악기, '장기하와 얼굴들' 보컬 장기하의 퍼커션 연주도 곁들여진다.
한달 두달씩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히키코모리(운둔형 외톨이)' 생활을 하는 탓에 이승환 스스로 “진짜 소풍을 기다리듯” 들떠 있다. 문제는 그의 별명이 공연마다 비를 부르는 '우신(雨神)'이라는 것. 2007년 잠실 주경기장 공연 때는 쏟아지는 폭우에 조명의 3분의 2가 꺼져 어두컴컴한 무대에서 노래한 적도 있다. 비 내리는 호숫가도 나름 운치있을 것 같지만, 관객들을 위한 우비 정도는 미리 준비할까 싶단다.
오는 10월이면 데뷔 20주년을 맞는 이승환은 “콘서트를 계속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아직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했다. 정규 앨범으로는 2006년 말 발표한 9집이 마지막이니 신보를 낼 때도 됐지만 “악기 연습하고, 다른 뮤지션들 음악 열심히 들으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솟아나기를 기다리는 중”이란다. “저랑 4집 앨범을 함께 했던 프로듀서 데이비드 캠벨이 최근 작업한 음반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육십을 훌쩍 넘은 분이 딱 20대가 좋아할 음악을 훌륭하게 만들어내셨더라구요. 제 음악도 '추억'에 머물지 않고, 언제나 그렇게 새로운 것이었으면 합니다.”
이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