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팬은… '내 삶의 바람막이'
[클로즈업] 데뷔 20주년 후배 헌정 '환타스틱 프렌즈' 이승환
20년 내내 응원해준 '든든한 파워'… 2년전 빗물·땀범벅 공연 기억 남아
12월24일 '기념콘서트'서 추억선물
세월은 그를 비켜갔다. 조그만 얼굴 위의 팽팽한 피부. 흘깃 본 팔 근육도 탄탄해 보인다. 웃을 때마다 잡히는 콧대 위의 매력적인 주름에 연륜이 겨우 느껴진다.
여간해서 나이를 분간할 수 없는 이 남자. 이승환은 여전히 '슈퍼 동안'이며 '어린왕자'로 불릴만하다. 무대 위에서 '회춘'을 거듭하는 그가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맞이했다. 후배 가수들이 이를 기념해 그의 히트 곡을 재해석해 앨범 <환타스틱 프렌즈(Hwantastic Friends)>에 담았다.
그는 감상에 젖지 않았다. 담담했고 차분했다. 그는 "숫자에 불과하죠"라고 겸손해 했다. 다만 "팬들의 추억을 극대화하는 기념적인 날을 만들고 싶었어요"라며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 20년의 세월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을 꼽아 달라고 하자 2007년을 떠올렸다. 주로 팬들과 공연 무대를 통해서 호흡했던 그답게 콘서트에 대한 기억이었다.
"5월 잠실주경기장 공연이 대단했죠. 극한의 공연이었어요. 비 때문에 영상을 틀 수가 없었어요. 조명은 2/3 터졌죠. 특수효과는 아예 기대할 수 없었어요. 말은 안했지만 가수와 스태프 그리고 팬들이 오늘은 사력을 다해보자고 서로 교감을 했던 것 같아요. 그때 깨달았죠. 쇼는 음악이 뛰어넘는 것이고 음악은 사람한테 안되는 거구나 그렇게요."
이승환은 감전의 위험 때문에 영상도 조명도 없는 어두컴컴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우비를 입은 팬들은 빗물인지 땀인지 그리고 눈물인지 모르는 액체를 뒤집어 쓰고 그와 함께 뛰었다. 이승환은 그날 무대를 마치고 "다음 공연은 5배는 더 잘할 자신 있다. 오늘 무대를 함께 한 팬들에게 꼭 보답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자주 되뇌었다. 그만큼 20년 내내 응원하고 지지해준 팬들은 거침없이 세상과 싸우면서 노래한 그를 응원하고 지지했다. 그의 표현대로 '독거노인의 바람막이'같은 존재였다. 낯간지럽다며 '생일상'을 거절하던 그가 선뜻 20주년 프로젝트에 나서게 된 것도 팬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공연 레퍼토리를 외우는 것은 이제 기본이고 조명이 켜지고 꺼지는 순서까지 외우는 팬들도 있어요. 누구보다 무서운 존재들이 됐죠. 허투루 할 수 없으니 스태프는 공연이 끝나면 팬들 눈치부터 봐요. 팬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공연장을 빠져나가면 그날은 안심인 거죠."
이승환은 준엄한 평가를 잊지 않는 팬들 때문이라도 늘 새로운 무대를 고민해야 했다. 그는 데뷔 후 줄곧 변화무쌍한 무대를 고민해왔다는 데 자부심을 내비쳤다. 자신만의 무대로 승부하고 싶었다는 것. 무대에 대한 그의 자존심은 2007년 컨츄리꼬꼬 측과 무대 사용을 놓고 법적공방을 불사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연예계에서 무대에 대한 '장인'으로 그를 칭하는 것도 이 같은 고집 때문이다. 그는 20주년을 기념해 12월24일부터 26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여는 <20주년 기념 역대 최강 콘서트>에서 모든 것을 쏟아 보일 계획이다.
"5시간 넘게 공연했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팬들도 이제 노화돼서 그런지 내심 3시간 안팎 하는 공연을 반기는 것 같아요. 하하. 그래도 실망시켜서는 안돼요. 공연 2개월 전부터 술도 안하고 준비에 돌입하죠."
이승환의 20주년 기념 앨범에는 1989년 발표된 <텅빈 마음>부터 8집 <심장병>까지 이승환의 히트 곡을 다른 감각으로 해석해 다른 목소리로 불렀다.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은 클래지콰이 프로젝트, <덩크슛>은 조권과 웨일이 <내가 바라는 나>는 유희열과 넬의 김종완이 함께 했다. 윤건 타이거JK 셔니슬로 버벌진트 45RPM의 제이권도 등이 한데 모여 부른 <체념을 위한 미련>과 피아 윤도현 노브레인의 이성우 김진표 등이 함께 한 <붉은 낙타>도 기대를 모은다.
"몇몇 가수들은 나보다 100배는 잘한 것 같아요. (못믿겠다는 표정을 짓자) 정말로요. 대신 이번 앨범은 헌정은 아니에요. 제가 그럴 인물이 돼나요.(웃음) 다들 제게 조금이라도 호의를 가지고 참여해줘서 그런지 신경을 써서 재해석 해준 것 같아요. 그게 고마울 뿐이죠."
김성한기자 wing@sportshankook.co.kr
2009-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