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자유롭게 음악한 20년 행운이었죠"
20주년 음반 '환타스틱 프렌즈' 내고 12월 공연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이승환의 음반기획사 드림팩토리 건물 입구에는 '20주년을 경하한다'는 팬들의 축하 인쇄물이 빼곡히 붙어있었다. 속속 배달된 꽃바구니에도 '당신의 음악으로 인생의 절반이 행복했습니다'라는 감사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15일은 1989년 이승환이 1집 'B.C 603'을 낸 지 꼭 20주년 되는 날. 드림팩토리 사무실에서 만난 이승환은 20년간 '어린 왕자'로 불렸듯이 얼굴에서 세월의 흐름을 감지하기 어려웠다.
"20년간 얼굴을 참 잘 관리한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1년에 한번씩 레이저 시술을 받고, 2주에 한번 피부과에 다닌다"며 "주름 관리는 안했는데, 10일 전 기내에서 처음 링클케어 제품을 구입했다"고 '나름의 관리 비결'을 유머러스한 입담으로 건넸다.
그러고보니 불혹이 넘은 나이라면 누구에게나 생기는 뱃살도 없고 팔근육도 꽤 단단해보였다.
"누군가가 '저를 키운 건 8할이 입방정'이라고 하더군요. 뱉어야 지킬 것 같아서 8월 공연 때 관객들에게 12월 공연에서 '윗도리를 벗겠다'고 말했죠. 아니면 환불해준다고요. 언젠가 기타를 맨 상반신 누드 촬영도 해보고 싶기에 요즘은 정말 운동만 하러 다녔어요. 평소에도 집 밖에 잘 안나가죠. 차 산지 3년9개월인데 주행거리가 8천200㎞예요. 천안에 있는 어머니 산소에 간 게 가장 멀리 간겁니다."
가벼운 말 뒤에 20주년의 의미를 묻자 의외로 담담한 답변이 돌아왔다.
"특별한 의미는 두지 않아요. 20주년은 숫자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제 20년 세월은 행운이었죠. 행운이라는 건 20년간 남의 간섭없이 노래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27일 발매될 20주년 기념 음반 '환타스틱 프렌즈'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죠. 제가 '갑'이 아니라 '을'이 됐으니까요."
그가 말한 '누군가' 혹은 '갑'은 플럭서스뮤직의 김병찬 대표다. 김 대표는 친구인 이승환의 20주년을 기념하고자 후배 가수들이 이승환의 노래를 재해석해 부른 음반 '환타스틱 프렌즈'를 선물로 기획했다.
이승환이 작사ㆍ작곡한 신곡 '좋은 날 2'와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를 담고 1집의 '텅빈 마음'부터 8집의 '심장병'까지 그의 히트곡을 후배들이 새로이 편곡해 불렀다.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은 클래지콰이 프로젝트, '내가 바라는 나'는 유희열과 넬의 김종완, '덩크슛'은 2AM의 조권과 웨일, '붉은 낙타'는 윤도현과 노브레인의 이성우, 김진표가 재해석했다.
"자작곡만 넣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제가 개입하면 안되겠더라고요. 선곡과 편곡은 플럭서스뮤직과 가창자들이 했죠. 저는 클래지콰이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몰랐어요. '크리스마스에는'도 윈디시티가 원해서 부른 곡이죠."
팬들에게 깜짝 선물이 될 신곡도 김 대표의 조언에 따라 '말랑'하고 '트렌디'하다. '좋은날 2'는 브릿팝 계열의 음악으로 '일상에 지친 샐러리맨, 시험에 내몰린 아이들의 평화로운 휴식에 대한 판타지'라고 한다. '오늘 하루 난 실컷 먹고 잘거야'란 가사가 포인트라고.
20주년인 만큼 그에게 옛날 이야기를 좀 해보자고 했다. 그가 회상하는 1990년대 가요계는 '르네상스'다.
"넥스트, 015B, 서태지 등 많은 가수들이 다양한 시도를 거침없이 했죠. 자부심으로 싸우던 시절이에요. 몇십만장 더 팔리는 것보다 '얘네가 이런 시도했어? 이런 엔지니어와 믹싱했어? 이런 뮤지션과 작업했어?'라며 음악으로 경쟁했죠. 덕분에 음악들이 복잡다단했어요."
그가 록과 발라드를 넘나들며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도 자유로이 음악할 여건이 됐기 때문이다. 물론 데뷔 전, 아들의 진로에 반대한 아버지로 인해 우울증으로 2달간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승환에게 '유산'이라며 500만원을 건넸고, 그는 음반 한장 만드는데 2-3천만원이 들던 시대에 이 돈으로 1집을 직접 제작했다. 이후에도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고 마음껏 음악을 했다.
"지금 이 건물이 아버지 소유인데 지하를 빌려 연습실을 만들어 시작했어요. 매니저도 없었죠. 1집의 10곡 중 7곡이 인기차트에 올라가며 히트하자 사람들이 아버지 극성으로 가수된 줄 알더군요. 이때는 돈 때문에 음악하지 않겠다는 대전제가 있었죠. 가장 마음이 순수했던 시기예요."
이후 승승장구한 그는 후배 양성에도 뛰어들었다. 1994년 '마법의 성'을 부른 더 클래식부터 이소은, 정지찬, 인디밴드 시데리크 등 7팀을 만들었다. 이 일을 완전히 접은 건 지난해 9월. 후배들의 음반을 제작하면서 적자가 누적됐기에 그는 이제 모든 족쇄로부터 풀려났다고 웃었다.
그는 지난 시간 중 음악을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있다고 고백했다.
"2003년 5시간반 동안 공연한 기록이 있는데 제가 워낙 무대에서 방방 뛰다보니, 이때 공연하면서 숨이 차 죽을 것 같았어요. '좋은 모습 보일 때 그만둘까'도 생각했죠."
그러나 그는 12월24-26일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20주년 기념 무대에 다시 오른다. 13인조 브라스 빅밴드와 함께다. 자신의 공연은 늘 진화했다고 자부하는 그답게 20주년 무대에는 물량도 많이 투입하고 히트곡 위주로 노래할 예정이다.
그에게 남자 이승환의 삶은 어땠느냐고 묻자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았다"고 한다.
"저는 붙임없는 '플랫한 삶'이 좋아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지도 않죠. 그만큼 삶도 고단해지니까요. 딱히 행복하지 않아도 고요하고 잔잔한 삶을 살았죠. 남에게 '민폐끼치지 말고 살자'가 제 평소 소신입니다."
이어진 그의 답변은 팬들을 위한 보너스다.
"언젠가 사주보는 분이 제가 공방살이 있어 여자가 안 꼬인대요. 독수공방하는 사주래요. 팬들은 제게 목소리가 에로틱하다고 '욕정범벅'이라고 부르지만, 제가 아무래도 페로몬이 부족한가봐요. 하하."
mimi@yna.co.kr
연합뉴스 연예 | 2009.10.19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