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된 어린왕자 지금도 젊은 그 음악
ㆍ특별한 20주년 앨범 ‘환타스틱 프렌즈’ 낸 이승환역시 이승환이었다. 그가 20주년을 맞아 내놓은 기념앨범 ‘환타스틱 프렌즈’(플럭서스뮤직)는 발매되자마자 온·오프라인 앨범 판매차트를 모두 석권했다. 유희열, 윤도현, 김종완, 조권, 호란 등 음악성 뛰어난 후배 가수들이 이승환의 노래를 새로 편곡하고 재해석해 불러 발매 전부터 관심을 모았던 음반. 강산이 두 번 변하면서 소녀팬들은 펑퍼짐한 아줌마가 됐지만 마흔네살 이승환은 그대로였다. 지존급 ‘절대 동안’과 톡톡 튀는 경쾌한 말투. ‘엽기발랄’한 어록을 쏟아낸 그와의 인터뷰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수다처럼 유쾌하고 즐거웠다.
# “제 지명도가 땅에 떨어졌다네요.”
20주년 기념음반이라고 했지만 이승환이 밝힌 음반 제작의 ‘실제’ 동기. 자신은 아직도 젊다고 생각하지만 가요계에서 44세라는 나이는 그 자체가 ‘압박’이다. 어딜 갈 때면 “이승철씨 아니냐”는 질문도 종종 받는다. 오랜 열성팬들이 들으면 가슴을 칠 일. 그래도 그를 사랑하는 ‘아줌마 팬’들은 20년 전 첫 음반 발매일이던 지난 15일, 광화문 전광판에 ‘당신이 있어 고맙다’는 광고를 냈다. 살림도 빠듯한 팬들이 헛돈 쓴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후배들이 부른 게 100배 더 낫던데요?”
음반에 대한 그의 평가다. 음악성 뛰어나고 개성이 강한 후배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다시 불렀다는 것만으로도 팬들의 관심을 끌 만한 음반. 그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맡겼는데 훌륭하게 바뀌어 깜짝 놀랐다. 절대로 헌정음반이 아니라는 것도 거듭 강조했다. 아직 그럴 자격이 안 된다는 것이 이유다. 이 때문에 앨범 판매로 발생하는 인세수익은 받지 않기로 했다.
#“어린 왕자란 말 너무 싫어요. 그랬더니 저더러 숏다리 늙은이래요. 헉~”
1989년 데뷔 이래 줄곧 따라다녔던 수식어 ‘어린 왕자’. 처음부터 이 별명이 맘에 안 들었는데 평생을 족쇄처럼 따라붙는다. 동안과 순수해보이는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착한 노래만 불러야 한다는 부담감. 그런데 숏다리 늙은이도 싫긴 하다. 뿐만 아니다. 반바지 입고 나왔던 뮤직비디오를 본 어떤 팬은 “무슨 어린 왕자 다리에 털이 그렇게 많냐”고, 가까이서 본 한 팬은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하더라”고 ‘비수’를 꽂는다. 이젠 페로몬 왕이라고 불리고 싶다. 여자들이 안 꼬여서 너무 외롭다. 언젠가 사주 보는 지인에게서 공방살이 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독수공방하는 것 같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에게 ‘어른’은 ‘뻔뻔’과 통하는 말이다. ‘간과 쓸개 다 빼놓고’ 다녀도 살아남기 힘들다는 가요계에서 그는 신인시절부터 부딪치고 싸웠다. 잘못된 관행과 풍토에 젖어 있던, 말 안 되는 현실과 타협하는 게 싫었기 때문에 주류에도 쉽게 편입되지 못했다. 기획사도, 매니저도 없이 아버지에게 미리 받은 ‘유산’ 500만원으로 음반을 자체 제작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곡이 ‘텅 빈 마음’. 덕분에 가요계에서 졸지에 ‘재벌 아들’이 됐다. 음반기획사 드림팩토리를 운영하며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에도 손을 댔지만 당초 그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몇년 안 돼 접었다. 그래도 탤런트 박신혜를 키워냈다. 딸뻘인 신혜는 그를 삼촌, 심지어 오빠라고 부를 때도 있다.
#“60이 되어도 록페스티벌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의 공연은 에너지가 넘쳐난다. 소녀들을 들뜨게 했던 이승환표 발라드를 비롯해 실험정신이 가득한 록 등 다양한 음악적 성과들을 쏟아놓는다. 소리치고 뛰어다니며 열정적인 무대 매너를 보여주는 그의 ‘포스’는 흡사 ‘교주’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음악만 양산하며 획일화되어 가는 가요계와 그는 타협하지 않을 생각이다. 12월24일부터 3일 동안 서울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는 대중보다 반발 앞선, 여전히 번뜩이는 감각을 자랑하는 이승환을 만날 수 있다.
<박경은기자 king@kyunghyang.com>
2009-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