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 비결? 어른세계 편입을 거부한 덕인가요"
가수 데뷔 20주년 콘서트 여는 이승환
"입맛은 아직 어린애예요… 도가니탕도 안먹고 술·커피맛도 모르고…"
가요계 풍토와 싸우며 폭탄선언도 여러차례…
돈 안돼도 지방공연 계속
가수
이승환(44)이 데뷔 20년을 맞았다. 오는 12월 24~26일 서울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선 '이승환 20주년 기념 역대 사상 최강 콘서트'도 연다. 가수
유희열·
윤도현·클래지콰이·웨일·조권(2AM)·윈터플레이·넬·
타이거JK 등은 그의 20주년을 축하하기 위한 '환타스틱 프렌즈'란 앨범을 내놨다.
'정력화신 페로몬왕 이승환님의 20주년을 축하합니다.' 이승환을 만나러 간 지난 15일 서울 성내동 '드림팩토리' 사무실. 팬들이 갖다 놓은 화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승환은 니트 모자에 새빨간 에나멜 운동화 차림으로 사무실에 성큼 들어섰다. 팬들의 말처럼 '믿어지지 않는 동안(童顔)'이었다. 진지한 말투로 농담을 하는 이승환답게 그는 이날도 "처녀 피로 목욕을 한 건 아니고…. 2주일에 한 번씩 피부과를 다닌 덕"이라고 말했다.
◆편승엽과 같은 또래인 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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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수 이승환(44)은 요즘도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운동을 한다. 그는“처진 뱃살, 나이 든 목소리, 늘어지는 라이브 공연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플럭서스 제공
요즘 10대들은 그를 '트로트 가수 편승엽과 같은 또래인 남자'로 기억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얼굴 비교' 사진 때문이다. 그만큼 어려보인다는 뜻. 이승환은 "어른들의 세계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며 살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단순히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이승환은 술과 보양식, 가라오케처럼 어른들이 즐기는 문화에 천성적으로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도 입맛은 어린애예요. 청국장·도가니탕 이런 것 잘 안 먹고요. 술이나 커피도 좀처럼 맛있는지 모르겠어요."
'어른들의 세계'를 싫어하는 탓에 주류에도 쉽게 편입되지 못했던 그다. 데뷔 이후 오랫동안 가요계 풍토와 싸우며 살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도 가수 하기 힘든 세상이지만 1989년 데뷔했을 당시엔 신인들이 살아남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어요. 방송국에 굽실거리고 기자들에게 잘 보이는 게 무슨 노래를 부르느냐보다 중요했죠. 그런 현실이 싫어서 엄청 싸웠어요. PD랑 언쟁하다 구설수로 고생한 적도 있었죠(웃음)."
그동안 유난히 가요계에 쓴소리를 해왔던 것도 같은 맥락. 이승환은 "음악 하는 만큼 대접받는 세상, 음악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세상을 찾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노래가 쏟아지는데 아무도 여기에 대해 반기를 들지 않아요. 모난 돌처럼 굴지 말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저라도 계속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폭탄선언의 연속지난 20년 동안 폭탄선언도 여러 차례 했다. 2006년엔 "CD로 정규앨범을 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었고, 2003년엔 "내년부턴 공연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이승환은 "원래 내 인생의 8할이 입방정이라서 그렇다"고 농담하면서도 "다 뜻이 있어서 했던 소리"라고 말했다.
"2003년엔 '공연에서 보여줄 게 더 이상 없다'는 한계에 부딪혔던 때였어요. 5시간33분짜리 최장공연 기록을 그때 달성한 후라, '이젠 뭘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죠. 싱글 음반으로만 승부하는 세태가 싫어서 정규음반을 더 이상 못 내겠다 싶었던 때도 있었고요. 다시 앨범을 낸 건 음원으로만 승부하는 건 진짜 승부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예요. 노래 한 곡으로 음원사이트 1~2위를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앨범 한 장으로 평가받는 것임을 깨달았죠. 공연을 계속하는 건 일종의 생존 본능이에요. 남들이 저보고 동안이라고 하는데, 전 공연하면서 오히려 에너지를 얻거든요(웃음). 남의 공연은 4시간 동안 서서 못 보겠는데 내 공연에선 4시간 동안 뛰고 노래해도 끄떡없으니까."
◆지방공연, 수익 안 나도 계속티켓파워 1위를 자랑하는 이승환이다. 지금도 서울에서 그가 여는 콘서트는 어김없이 5초 만에 전석이 매진된다. 한데 이승환은 "지방에선 영 사정이 다르다. TV에 자주 안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작년 지방순회 공연만 해도 좌석이 절반가량 비는 바람에 적자가 났다고. 이승환은 "공연 끝나고 손해 본 기획자들에겐 사비를 털어서 돈을 모두 돌려줬다. 이렇게 안 하면 다음엔 지방공연 안 받을 것 아니겠느냐"고 말하며 웃었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순회 공연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가수는 불과 4~5명밖에 안 돼요. 그런데 제가 여기서 수지가 안 맞는다고 빠지면 한 명이 더 줄어들잖아요. 돈이 안 돼도, 자꾸 해야죠. 이건 의무고 사명이니까."
이승환은 "앞으로도 전사처럼 살겠다"고 말했다. "요즘도 저 어디 나가면 '이승철씨 아니세요?'라고 묻는 사람 가끔 만나요(웃음). 어차피 전 주류가 아니란 얘기죠. 이왕 이렇게 된 것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살려고요. 그게 내가 사는 방식이니까. 어른이 되지 않는 길이니까."
조선일보 연예 | 2009.10.19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