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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매일경제::이승환 “공연 당일 맹장염 걸릴까봐 20년 동...

2009-11-25

이승환 “공연 당일 맹장염 걸릴까봐 20년 동안 걱정 중”


대한민국 대중 음악계에서 이승환의 존재는 특이하고 특별하다.

음반을 내줄 기획사를 찾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그는 데뷔 음반부터 ‘제작자’가 되었고, 이후 20년간 줄곧 자신의 음반을 ‘직접’ 제작해왔다. 그랬던 그가 처음으로 ‘갑’이 아닌 ‘을’의 입장이 되어 음반을 발표했다. 20주년 기념음반 ‘환타스틱 프렌즈’.

그를 얘기할 때 ‘데뷔 20주년’이라는 수식어는 그닥 엄청난 무게감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이번 음반에 유희열, 윤도현, 타이거JK, 이성우(노브레인), 조권(2AM) 등이 참여한 것 또한 흥미로운 소식이긴 하지만 엄청난 이슈는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그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공연 당일 행여 몸이 아플까봐 맹장까지 뗄 생각까지 했다’는 것, ‘숨이 귀 밑까지 차오를 만큼 눈앞이 노래질 만큼 죽을 각오로 공연을 준비한다’는 것, ‘여전히 20대가 좋아하는 음악, 20대 음악을 하고 싶다’는 것 등이다.

동료 선후배, 음악 관계자들로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재능과 여건을 갖춘 부러운 가수’로 인식되어온 이승환. 물론, 그에게도 아픔과 고비는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국내에 몇 안되는 ‘특별한’ 뮤지션이다.

지금도 20대의 감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꽤 오래 그럴 것 같은 그와 만났다.

“뱉은 말을 지킨다는 게 소신이다. 제가 소신이 5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입방정이었다. ‘연말엔 무조건 웃장을 깔 테니 안 그럼 환불해달라고 그래라’ 그 말도 내뱉는 바람에 지켜야 한다.(웃음) 그래서 지금 미친 듯이 운동하고 있다. 부산 공연은 시기상 힘들 것 같고, 서울 공연부터 보여줄테다.”

-20주년 기념 앨범 ‘판타스틱 프렌즈’ 반응이 뜨겁다.

▶ 하루 반짝 한 거다. 골수는 좀 있어서 4일은 가지 않을까.(웃음)

-조금 뜻밖의 가수 이름들도 보였다. 아이돌그룹의 멤버도 있었고.

(유희열, 윤도현, 이하늘, 김진표, 타이거JK, 이하늘, MC 스나이퍼, 호란, 알렉스, 김종완(넬), 아웃사이더, 윤건, 윈디시티, 조권(2AM) 등 세대를 아우르는 뮤지션들이 총출동했다.

▶ 최초의 계약상에 ‘을’이 된, 제작을 하지 않은 앨범이다. 생일상 차리는 건데, 생일상에 미역국을 직접 끓일 수는 없으니까. (이번 앨범을 기획제작한 플럭서스 뮤직에서) 섭외부터 모든 것을 알아서 해줬다. 희열이, 종완이, 힙합 하는 애들, 록 하는 애들, 윈디시티 정도의 섭외에만 관여했다. 녹음 과정도 전부 보지는 못했다. 희열이, 종완이, 윤도현, 노브레인 녹음 때만 이틀 정도 갔다.

-녹음을 마친 내 노래들을 들어보니 어떻던가. 의외의 매력을 발견한 가수는 없었나.

▶ 내 것보다 100배는 좋았다. ‘역시! 잘 해’ 싶었다. (의외의 매력을 발견한 가수는) 노브레인의 이성우? 시원하더라.(웃음) 록 하는 사람은 하늘에서 내려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는데, ‘록 스피릿’이라고 하지 않나. 그걸 갖고 가기 힘든건데, 딱 록 그 자체더라. 좋은 발견이었다.

-고마움의 표현으로 참여해준 이들에게 직접 고른 선물을 한 걸로 안다.

▶ 직접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구입했다. 워낙 전자제품을 좋아하고, 안경도 좋아해서… 종완이와 윤건씨에게는 안경을 선물했고, 하늘이에겐 큰 가방을 선물했다. ‘천하무적 야구단’에 나오는 현배(이하늘 동생)한테는 털이 이상하게 나서 면도기를 사줬다. 선글라스는 도현이에게 선물했고, 노브레인 이성우는 로커니까 징 박힌 팔찌를 줬다. 타이거 JK는 뭘 좋아하는지 몰라 가장 구하기 힘들다는… 요즘 가장 핫 한 카메라를 선물했다. 그게 135만원이었는데, 사실 종완이에게 사 준 안경이 제일 비쌌다. 150만원이었다.(웃음)

-인터넷 쇼핑을 즐겨하나보다.

▶ 자주 한다. 과일은 ** 쇼핑몰에서 자주 산다. 요즘엔 하루 만에 배달되더라. 그런데 맛은 별로 없더라.(웃음) 내 별명이 연예주간지다. 인터넷으로 다양한 뉴스도 보고 서핑도 많이 한다. 메일을 보내면 1분만에 답장도 보낸다. 그만큼 컴퓨터 앞에 있는 일이 많다는 얘기다.

-20주년 기념앨범의 인세를 안 받겠다고 했다. 동료들의 반응은 어떤가.

▶ 말로는 ‘형 너무 착해요, 형은 뭐 먹고 사나요?’ 하는 반응이었다. 단순하고 즉흥적인 면이 많다. (이것 또한) 즉흥적으로 정한 거다. (하지만) 뱉은 말을 지킨다는 게 소신이다. 내가 소신이 5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입방정이었다. ‘연말에 무조건 웃장을 깔 테니 안 그럼 환불해준다’고 내뱉는 바람에 지금 미친 듯이 운동하고 있다.(웃음) 부산공연은 시기상 지키기 힘들 것 같고, 서울 공연부터 보여줄테다.

-운동을 많이 하면, 몸은 좋아지지만 얼굴은 좀 헬쓱해보이기도 하는데…

▶ 젖산이란 게 나온다. 항산화물질을 계속 먹으려고 한다. 토마토가 좋다고 해서 아침마다 하나씩 먹는데, 한 4년된 것 같다.

-토마토는 유기농인가?(웃음)

▶ 하하하! 아줌마가 사다주시는 거라,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럴 거다. 지금은 식이요법 중이라 뭐든 맛있을 때다. 맛 없는 것만 먹고 있으니까. 나이가 들면서 뱃살이 제일 문제다. 3년을 해도 잘 안 빠져서, 이번에는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탄탄한 근육질 몸매로의 변신은 몇 해전부터 감지됐다. 여전히 몸 만들기에 열중하는 이유는 뭔가.

▶ 모든 남자들의 로망일 거다. 한번 쯤은 가져야 되지 않을까 싶어 꾸준하게 될 때까지 하는 거다. 되면 그만둘 거다.(하하하!) 한 번 딱 되면.

-누구 정도의 몸이 되면 만족할까.

▶ 2PM의 재범?(하하하) 롤 모델로 삼을 수 있는 게 나같이 키 작고 그래야 하니까. 키는 작지만, 밸런스는 정말 좋더라.

-올해 20주년을 맞은 가수가 많더라. 지금까지 행보를 돌아보면 벅차지 않나.

▶ 헌정앨범이 아니라 기념앨범이다. 헌정 받을만한 위치가 아니다. 행운이었다. 누군가에게 간섭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었고. 사건사고가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기억도 잘 안 난다.

-사건사고가 많았다는 느낌은 없다.

▶ 왜 ‘애원’ 귀신 조작부터 소송도 많았다. 돌이켜보니, 다른 사람에 비하면 순탄하게 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남들처럼 한 방에 훅 가지 않고 서서히 훅~ 갔다.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고,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남들처럼 급하게 떨어뜨려야 되는 상황이 아니고, 서서히 내려놓을 때를 알 수 있을만큼 앞이 보였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초초해하고 두려워도 했지만, 그걸 지나고 보니까… 또, 이렇게 20주년을 맞으니까. 이제 욕심이 별로 없다. 명예나 돈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일찌감치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만약, 대형기획사과 계약을 맺고 가수활동을 해 왔더라면 어땠을 것 같나.

▶ 아마 만족스럽지 못했을 거다. 20주년 앨범도 못 나왔을 거고. 딱히 그런 시스템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내가 그런 것을 못 견뎌하는 스타일이었을 거다.

-의외로 잘 적응할 수도 있었을 듯 싶다. 데뷔 초기 이미지는 순하고, 반항적인 기질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까.

▶ (웃음) 실제로도 그런 음악을 했고, 실제 성격도 순했다. 4집 때부터 냉소적인 음악들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본질인 록을 많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5집 때부터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남들처럼 한 방에 훅 가지 않고 서서히 훅~ 갔다.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고,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남들처럼 급하게 떨어뜨려야 되는 상황이 아니고, 서서히 내려놓을 때를 알 수 있을만큼 앞이 보였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초초해하고 두려워도 했지만, 그 시기를 지나고 보니… 또, 이렇게 20주년을 맞다보니 욕심이 없어진다. 이제는 명예나 돈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다.

-있을만큼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웃음)

▶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생각만큼 없다.(웃음) 공연이나 음악하는데 투자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보니.

-그래도 건물이 있지 않나. 스타 빌딩족에도 매번 이름이 오르내리는데…

▶ 그거, 아버지거다.(웃음) 증여세 살벌하게 내고 받아서…(웃음) 아버지한테 임대료를 엄청나게 드렸다. 건물 시세 관련 기사 나오는 거는 전부 잘못된 거다. 강동구에 있는 게 뭐 그렇게 비싸나? (아니라고 수정할려고 했더니) 주변에서 말리더라.(웃음) 그것도 ‘가오’라고.

“4집 때부터 냉소적인 음악들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본질인 록을 많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5집 때부터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발라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변절자’라고도 얘기했고, 음악이 왜 이렇게 시끄럽냐며 외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난 늘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40대 중반이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은 20대가 좋아하는 음악, 20대 음악을 하고 싶다는 거다.”

-4집 앨범 이후 내리막길을 달렸다고 표현했다. 오르막길을 달리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텐데…

▶ 최근에는 알듯 모를 듯. 그 당시엔 괜찮았다. 일단, 나는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많은 사람이었고, 40대 중반이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은 20대가 좋아하는 음악, 20대 음악을 하고 싶다는 거다. 말하자면 어렸을 적부터 미국 팝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지금도 브릿 팝이나 미국팝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그런 식의 음악을 되게 하고 싶어한다. 그러면서 가요와 버무리는 작업을 하고 싶다. 4집 때부터 제 마니아가 생겼다고 생각하는데 그 마니아들의 입김도 무시할 수 없었다. 욕 먹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웃음) 그 마니아들은 계속 새로운 것을 하길 원했고, 안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공연은 무조건 ‘락키’해야 하고… 그 당시엔 인터넷 세상만 본 거였다. 더 넓은 세상도 있는데. 그렇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발라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변절자’라고도 얘기하고, 왜 이렇게 시끄럽냐며 많이들 끊으셨다. 지금도 나에게 절절한 발라드를 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다음 앨범부터는 발라드가 없을 거라고 얘기하곤 한다.

-음악으로 비춰봤을 때 감성적이고 섬세한 면모들이 많다. 뮤지션으로서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런 감성들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없나.

▶ 있었다. 실제로, 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우울해 하는 거다. 계속. 우울하면 슬픈 정서의 곡들을 할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이 도움이 많이 됐다. 제 친구가 그걸 보다가 운동을 해라, 마음의 발란스가 맞아야 우울하지 않다고 권유했다. (운동을 하면서) 긍정적으로 되고 사람이 많이 좋아졌다. 대신 음악은 슬픈 기조가 잘 안 나온다. 이번에 신곡 2곡도 전체적으로 밝다. 음악적으로는 좋았으나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분명 힘들었으니까.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정서적으로 큰 성취를 이룬 적이 없다. 대부분 열등한, 그래서 여자도 잘 못 사귀고, 스스로 약하다고 생각하고… 그걸 뛰어넘는 예술가가 2명 있다. 피카소와 모딜리아니이다. 나는 뛰어난 예술가도 아닌데다. 그들처럼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운동도 적당히 하면서 발란스를 유지하고 싶다.

-음악이 밝아졌다는 것은 마음도 밝아졌다는 얘기다.

▶ 그렇다, 이미 밝아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공연을 생명에 비유하면서 목숨을 거는 이유는 무엇인가.

▶ 처음 들국화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 선배들처럼 같은 경로로 성공하고 싶었다. 계속 공연을 해야겠다 싶었다. 방송이 적성에 맞지 않았고, 음반을 내고 나니 더 확실해 졌다. 방송을 거의 안 한 이유가 카메라 울렁증이 너무 심해서 머릿 속이 백지장이 되더라. 혼자 하는 취미가 많다.

-바꿔 말하면, 공연 외에 다른 일에서는 특별한 즐거움을 찾을 수 없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 AV나 장난감 등에 관심이 많다. 영상 쪽, 기계적인 것들을 좋아한다. 화질을 좋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것들을 연구한다.(웃음) 거의 집 밖에 안 나오지 않는다. 더구나 요즘엔 운동을 하고 있어서 술도 끊었다.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실시간 인터넷으로 친분을 유지한다.

-인터넷에서는 주로 부분에 어떤 관심이 많나.

▶ 뉴스를 많이 본다. 포털사이트와 내가 좋아하는 DVD, 얼리어답터 사이트 등. 올해는 밤 잠을 설쳐가며 나라 걱정을 했다. 그래서 시사 쪽을 끊었다. 신문을 안 본지도 한 달여 됐다. 너무 많은 정보를 받을수록 힘들더라.

-그런 쪽에 관심이 있나?

▶ 정치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 사회 참여를 하고 싶은데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게 싫다. 정치도 잘 모른다. 그냥 누군가의 행보를 좋아할 수 있는 정도의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회운동 관련 행사에) 섭외가 많이 왔는데 소속사에서 안하길 바랬고 나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 다들 겁내하니까.(웃음)

-요즘 보는 드라마는 없나.

▶ '미남이시여'를 가끔 본다. (박)신혜가 나와서 보고 있다. 드라마는 잘 안 보는데, '모래시계' 이후로 처음이다.(웃음)

-지난해 가을 구름물고기와 관련된 모든 사업을 정리했다. 이유는 뭔가.

▶ 남의 행복을 위해서, 내 행복을 위해서였다. 자랑은 아니지만 (박)신혜가 인터뷰할 때 드림팩토리에 있을 때의 행복에 대해서 얘기했다더라. 돈을 위해서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혜는 만년 유망주로 남아 있고, 마케팅과 홍보가 쉽지 않아 모든 이의 앞 길을 막고 있는 것 같더라. 음반은 잘 만들어도 사후 처리가 미흡하다 보니 섭섭함도 있었을 것이고. 아무 조건 없이 놓아줬다. 그 회사를 꾸리기 위해 너무 많은 일들을 했다. 버는 돈을 다 회사에 써도 적자라 스트레스 받고 여러가지 사건들도 터지고. 9월 30일자로 회사를 접었는데 그 후로 삶이 평화롭다.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죽을 각오로 한다. 숨이 귀 밑까지 차오를 만큼. 노란 황달이 보일 때까지. 하나, 공연 당일 날 아침 맹장염에 걸릴까봐 걱정이다. 그건 빼도 박도 못하는 거 아닌가. 맹장을 떼려고 문의도 해봤는데 미쳤다고 하더라. 식이요법으로 조절하면 된다고 해서 믿고 있다.”

-오는 12월 24일부터 3일간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연다. 이번 20주년 공연이 역대 최대 규모인가.

▶ 기획사에서 홍보가 그렇게 됐다.(웃음). 이번에는 13인조 브라스빅밴드와 함께다. 미술팀만 따로 3팀을 뒀고, 영상팀도 3팀으로 나눴다. 잔칫집 분위기로 펑키하고 재즈한 분위기로 갈 것이다. 컨츄리꼬꼬와의 사건도 있어서 더 특화하고 싶은 분위기다. 6월부터 준비했다. 오랜 기간 준비한 만큼 무대에서 드러날 것이다.

-공연하기 전 갑자기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나?

▶ 한 번 크게 공연 날 아침에 다친 적이 있었다. 목욕탕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웃음) 5시까지 리허설 하고 5시 반에 집에 와서 샤워를 했는데 귀가 찢어졌었다. 그렇게 오후 2시까지 있다가 4바늘 꿰맸더니, 귀가 부어서 아무 것도 안 들렸다. 한 숨도 못자고 피가 흘렀는데도 공연을 잘 마쳤다. 정신력인 것 같다.

-오래 준비하는 공연인만큼 100%를 다 쏟아내지 못한다면 아쉬움이 클 것 같다.

▶ 그래서 죽을 각오로 한다. 숨이 귀 밑까지 차오를 만큼. 노란 황달이 보일 때까지. 하나, 공연 당일 날 아침 맹장염에 걸릴까봐 걱정이다. 그건 빼도 박도 못하는 거 아닌가. 맹장을 떼려고 문의도 해봤는데 미쳤다고 하더라.(웃음) 식이요법으로 조절하면 된다고 해서 믿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팬들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지 않았나. 팬들에게 친절한 편은 아니지 않나.

▶ 예전처럼 여전히 냉담하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불편하고 어색하다. 환상을 깨려고 노력한다. 애증의 관계 같다. (팬들은) 누구보다 비판, 비난을 한다. (지금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황이라 예전처럼 비판했다고 발끈하지 않고 그냥 그러려니 한다. 나를 느슨하게 잡는 것은 아니고 음악만 하면 되지 싶다.

-TV 활동은 의도적으로 안하는 것인가, 불편한 것인가.

▶ 아니다, 불편하고, 어색해서 안한다. 내 기량의 50%도 못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이너스라 생각된다. 안하는 게 낫다.

-앞으로 20년 후의 모습은 어떨까. 상상해봤나?

▶ 마음은 지금이랑 같을 것 같다. 자유롭고 그 나이에도 저항 정신이 남아있을 것 같다. 나중에도 제작은 하지 않을 것이다. 캐릭터 사업도 했다가 살짝살짝 한눈을 판 적은 있는데, 정말 딴 거 하면 안될 것 같다.

-앞으로 해외진출에 대한 계획이나 일찌감치 나서지 못한 대한 아쉬움은 없나?

▶ 계획은 없다.(웃음) 아쉬움은 완전 있다.(웃음) 98년도에 혼자 일본 레코드사를 돌아다니며 CD를 준 적이 있다. 그런데 '누구냐"고 막 물어보더라. '나? 한국에서 온 가수라고, 들어보라'고 주고왔다. 그때 한중일 합작 '써클'이라는 팀이 있었다. 제가 그때 그걸 주고 있었는데, 사람 소리들이 막 들렸다. 보니 한국기자들이었다. 일본에서는 성공이 아니라, 그냥 일본에서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라 생각한다. 성공을 위한 삶을 살고 싶지는 않지만.

-드라마 OST 참여로 쏠쏠한 재미를 보는 가수들도 많다.

▶ 들어온 적이 별로 없다.(웃음) 처음으로 들어온 게 드라마 ‘얼렁뚱땅흥신소’였다. 만화 ‘대장금’ OST도 섭외가 와서 했다. (옆에 있던 플럭서스 홍보팀장이 말을 이어받으며) 이번에 영화 ‘백야행’에도 참여했다. 손예진, 고수, 한석규씨 나오는 영화인데 ‘내라 바라는 나’라는 곡을 불렀다. (이승환이 덧붙여) 95년도에 발표한 4집에 있던 노래다. 제 신곡보다 그 노래가 더 뜨고 있다.(웃음)

-가수로 시작해 현재 위치에 오르기까지. 분명 평범한 당신은 아닐테다. 비결은 뭔가?

▶ 음, 성실했던 것 같다. 최고인 적은 없었지만 무대에서만큼은 최선을 다했다. 소홀해서는 안됐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