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안녕하세요. 핑크마티니입니다. 한국에 올 수 있어 영광입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13일 밤 서울 광장동 악스홀에서 첫 내한 공연을 펼친 미국 포틀랜드 출신의 12인 재즈밴드 ‘핑크 마티니’의 리더 토머스 로더데일(40·피아노)은 본격적인 공연 시작 전 우리말로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종이에 적은 글을 보며 어눌한 말투와 불분명한 발음으로 읽은 인사말이었지만 팬들은 환호했다.
팬서비스 차원만은 아니었다. 매번 영어로 곡을 소개한 뒤 이를 우리말로 풀이하며 팬들과 호흡하려 애썼다. 알아듣기 힘든 발음이었지만 팬들은 로더데일의 발음을 다 같이 교정해주며 함께 공연을 즐겼다.
첫곡은 2004년 두 번째 앨범 수록곡 ‘렛츠 네버 스톱 폴링 인 러브’였다. 브래드 피트(47), 앤절리나 졸리(35) 커플이 출연한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2005) 삽입곡으로도 유명한 노래다. 출발부터 공연장을 낭만적인 분위기로 감쌌다.
리타 헤이워스(1917~1987)가 출연한 영화 ‘길다’(Gilda·1946)의 삽입곡이자 1997년 핑크마티니의 1집 수록곡 ‘아마도 미오’를 비롯해 3집 타이틀곡 ‘헤이 유진’, 2005년 MBC TV ‘안녕, 프란체스카’에 삽입돼 국내에서도 유명한 ‘행 온 리틀 토마토’, ‘노테 어 나폴리’, ‘케 세라 세라’ 등 히트곡 퍼레이드가 이어졌고 팬들은 흥겨움에 덩실덩실 댔다.
지난해 4집 ‘스플렌더 인 더 그래스(Splendor In the Grass)’ 발매를 기념하는 월드투어의 하나인 만큼 동명의 타이틀곡과 ‘싱(Sing)’, ‘니나 나나’ 등 신곡들도 다수 들려줬다.
공연 내내 열정적이고 세련된 무대 매너를 선보였던 차이나 포브스(40·보컬)는 “한국에 처음 왔는데 공연 내내 놀라웠다”면서 “한국에 다시 오고 싶습니다”며 웃었다.
재즈, 클래식, 샹송, 라틴 등 장르를 넘나들며 월드뮤직과 다문화에 익숙한 핑크 마티니는 한국에 와서도 한국어 등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 후 팬사인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연은 세계 여행을 즐기는 듯했다. 기본 보컬을 바탕으로 피아노와 바이올린, 트럼펫, 트럼본, 기타, 베이스, 하프 등의 멜로디 악기 위에 드럼과 퍼커션을 더한 편성은 장르 구분이 아닌 범주의 의미에서 월드뮤직의 세계와 진수를 보여줬다. 음악의 용광로라 할 수 있었지만 뜨거움보다 낭만적이고 따뜻한 느낌이 강했다. 1940~50년대를 떠올리는 음악은 고전미와 지적인 분위기도 오롯하게 전달했다.
핑크마티니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역사와 미술을 전공한 로더데일을 중심으로 1994년 결성됐다. 1997년 프랑스 칸 영화제를 통해 유럽에 데뷔한 이래 25개 이상의 오케스트라와 공연했다. 미국 뉴욕 카네기홀 공연 2회 매진을 기록했고 리모델링된 뉴욕의 현대미술관 오프닝과 제8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공연했다. 1997년 칸 영화제 당시 이들의 공연을 보던 영화배우 샤론 스톤(52)이 무대로 뛰어 올라가 함께 춤을 추면서 일약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