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제프벡]'기타神'이라 불리는 사나이 제프 벡은 거기 있었다

2010-04-02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살아있는 기타의 신’으로 불리는 제프 벡(66)은 바로 거기 있었다. 한 마디로 명불허전이었다. 다소 거창할 수 있는 ‘기타의 신’이라는 별명은 헛되이 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20일 밤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펼쳐진 벡의 첫 번째 내한 공연 ‘더 1ST 라이브 인 서울’은 벡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환상적인 시간이었다.

팬들은 벡이 연주로 가장한 설교 내내 감화됐고 심지어 그 은혜에 심취됐다. 보컬 없이 연주만으로도 깊고 풍부한 멜로디 라인들을 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일렉트로닉 기타 연주의 결이 너무나 깊고 넓다는 것도 인지했다.

공연의 초입, 공연장이 암전되고 벡의 모습이 거뭇하게 드러날 때부터 팬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정중히 90도로 인사하며 등장한 벡은 ‘이너티니스 브레스(Eternity’s Breath)’로 환상적인 세계의 포문을 열었다.

‘레드 부츠(Led Boots)’ ‘피플 겟 레디(People Get Ready)’, ‘브러쉬 위드 더 블루스(Brush With The Blues)’ ‘빅 블록(Big Block)’, ‘하우 하이(How High)’, ‘롤린 앤 텀블링(Rollin And Tumbin)’ 등 히트곡을 묵묵하게 연주했다.

이번 내한공연을 기념,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내에서 발표된 5번째 스튜디오 앨범이자 7년 만의 신작인 ‘이모션&코모션’(Emotion&Commotion)의 수록곡들도 들려줬다.

중세 성가를 모티브로 한 ‘코퍼스 크리스티 캐럴(Corpus Christi Carol)’, ‘햄머헤드(Hammerhead)’, ‘네버 얼론(Never Alone) 등 벡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내에 내놓은 곡들이 공연장에 울려 퍼졌다.

이번 신작에 수록된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의 주제곡 ‘섬웨어 오버 더 레인보’는 일렉트로닉 기타로 연주해도 기존의 어떤 커버곡들도 보다 신비롭고 서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역시 신작에 담긴 지아코모 푸치니(1858~1924)의 오페라 ‘투란도트’ 아리아인 ‘네순 도르마’를 연주할 때는 고전적이고 우아한 분위기마저 자아냈다.

벡은 ‘하이 스피드 컨트리(High Speed Country)’, ‘프리웨이 잼(Freeway Jam)’ 등을 앙코르 곡으로 들려주면 약 100여분의 뜨거운 공연을 마무리했다. 팬들은 모두 일어서서 쉴 새 없이 박수와 환호를 보냈고 그렇게 벡은 국내에 또 하나의 전설을 새겨버렸다.

벡의 일렉트로닉 기타 연주의 떨림은 관객들의 전율로 이어졌다. 벡이 연주하는 기간 동안 팬들은 모두 숨을 죽였고 연주가 끝나면 바로 숨을 토해내며 크게 환호했다. 물론 벡의 일렉트로닉 기타가 공연의 중심이었지만 드럼과 베이스, 신시사이저 등의 연주자들도 실력이 일품이었다. 벡은 그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리드하거나 터전을 만들었다.

벡은 일렉트로닉 기타를 연주하면서도 피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핑거주법만을 이용했다. 이에 따라 연주는 따뜻한 느낌과 더불어 다양한 표현력을 자랑했다.

무대 양쪽의 대형 스크린은 벡이 기타를 연주하는 손을 가깝게 잡은 영상을 내보내며 그의 실력을 더욱 감탄하게 만들었다. 어느덧 일흔 살을 바라보는 나이라 손에는 자글자글 주름이 가득했지만 손의 움직임은 어느 젊은 뮤지션 그 이상으로 역동적이었다. 아울러 젊은 뮤지션이 따라올 수 없는 노련함도 배어있었다.

벡은 공연 내내 여유로웠고 평안했다.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거장다운 품위를 잃지 않았다. 1960년대 그룹 ‘야드버즈’에 속해 있던 시절 악기들을 부숴버리기 일쑤였다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당시 악기의 결함 또는 자신의 연주에 만족하지 못해 그런 행동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이제 악기 또는 자신의 연주가 완숙의 경지에 오른 만큼 그런 모습은 볼 필요가 없어졌다.

곡이 끝날 때마다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환호에 벡은 언제나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화답했다. 매너 좋은 신사의 모습이었다. 공연 내내 거의 말은 없었다. 같이 연주하는 세션을 소개한 것 이외에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정중하게 인사하고 인자하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말을 한 것보다도 교감이 잘 이뤄진 공연이었다. 벡은 기타 연주로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말했고 전부를 표현했다.

공연을 보고 난 후 벡이 노장이라거나 정점에 이르렀다고 평할 수 없었다. 벡의 연주 실력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기타계의 거장이나 전성을 바로 목전에서 목도할 수 있다는 사실에 팬들은 벡의 연주 한 올이라고 놓치지 않기 위해 눈과 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벡은 에릭 클랩턴(65), 지미 페이지(66)와 함께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손꼽힌다. 제44회(2002)와 제46회(2004)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록 연주상을 받았으며 2009년 4월 록&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지난달 제52회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베스트 록 연주 부문상을 받았다.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개척한 기타리스트로 수많은 뮤지션들이 추앙하고 있다. 블루스 록 비롯해 사이키델릭 록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특히 클랩턴, 페이지와 함께 퍼즈톤과 피드백 등의 기타 사운드를 보편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 프라이빗 커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