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벡]5000명이 눈과 귀… 손가락 하나로 움직였다
2010-04-06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 전국 수석을 차지한 어느 고3 수험생이 밝힌 뻔한 공부비법처럼 제프 벡(66)이 그랬다.
20일 서울 올림픽홀에서 열린 그의 첫 내한무대는 참고서는 하나도 훑지 않고 교과서만 죽도록 판 어느 정통 기타리스트의 뿌리깊은 연주 미학을 온 몸으로 감상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전자 기타의 소리를 좌지우지하는 다른 부속물(액세서리 등)들의 도움을 받는 대신, 전자 기타가 보유하고 있는 내부 장치들을 최대한 이용하는데서 소리의 근원성을 찾았다. 이를테면 전자 기타의 트레몰로 암과 픽업 장치들을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을 이용해 소리와 음폭을 조절했다. 자신이 느끼는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봐 전자 기타에 흔히 쓰는 피크 조차 사용하지 않은 그는 엄지만으로 모든 소리를 제어했다. 다른 기타리스트들이 흔히 사용하고 응용하는 기타 이외의 ‘참고서’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셈.그 엄지는 100만불 짜리였다. 둔탁한 듯 찰진 듯 묘한 느낌을 동시에 안겨주며 가슴을 후벼파는 그의 ‘엄지 피킹’은 고요한 침묵의 시간에서부터 평화를 깨고 서서히 잠식하는 광분의 외침까지 단계별 조절기능으로 우리의 뇌와 가슴을 제어했다. 엄지가 꽤 요란한 소리를 냈다 싶으면 검지나 중지로 트레몰로 암을 움직여 살짝 감동 한자락을 안겨주고, 거친 소리가 필요하다 싶으면 이내 픽업을 분주하게 앞에서 뒤로 밀어넣었다. 그렇게 손가락의 힘만으로 그는 관객 5000여명의 눈과 귀를 훔치고 있었다. 그의 연주들은 배워서 터득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있는 듯했다.공연이 끝난 뒤 그는 커튼 콜을 두번이나 받고 무대에 다시 나타났다. 그의 명곡 ‘코즈 위브 엔디드 애즈 러버스(Cause We’ve Ended As Lovers)‘를 기어이 듣고 말겠다는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때문이었다. 하지만 제프 벡은 잃어버린 선율을 되찾는 작업이라도 하듯 어색한 연주를 이어갔다. 그래도 관객들이 물러서지 않은 건 단 1초라도 그의 연주가 보여주는 진실과 감동의 언어를 재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김고금평기자 dann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