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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벡] 살아있는 기타의 전설을 영접하다

201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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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첫 내한공연을 펼친 제프 벡(사진=프라이빗커브)

기타리스트 제프 벡(Jeff Beck)의 첫 내한공연

(서울=연합뉴스) 임은진 기자 = 제프 벡, 그는 진정 살아있는 기타의 전설이었다.

지미 페이지와 에릭 클랩턴과 함께 '세계 3대 기타리스트'로 불리는 영국 출신의 기타리스트 제프 벡(66)의 첫 내한공연이 20일 저녁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렸다. 지난 18일 국내에서 첫 발매된 그의 15번째 스튜디오 앨범이자 7년 만의 신작인 '이모션 & 코모션(Emotion & Commotion)' 월드 투어의 시작을 알리는 공연이었다.

이번 공연은 작년 12월 그가 내한한다는 보도가 있은 뒤부터 국내 음악 관계자와 팬들의 높은 관심을 받아온 공연인 데다 공연 주관사인 프라이빗커브와 가수 이승환이 유치를 위해 3년을 공들여 온 '작품'으로, 공연장은 팬들로 가득찼다.

이날 오후 7시5분. 선글라스를 끼고 스카프를 목에 두른 제프 벡이 안개 속에서 무대로 등장했다. 그의 상징인 하얀색 펜터 스트라토캐스터와 함께. 이날 세션은 드럼에 나라다 마이클 월든, 베이스에 론다 스미스, 키보드에 제이슨 레벨로였다.


첫 곡 '이터니티스 브레스(Eternity's Breath)'로 시작한 제프 벡은 '이모션 & 코모션' 월드 투어인 만큼 이 앨범의 수록곡인 '코퍼스 크리스티 캐럴(Corpus Christi Carol)'과 '해머헤드(Hammerhead)', '네버 얼론(Never Alone)' 등을 연달아 연주했다.

이어 재즈 퓨전을 실험한 '와이어드(Wired)'의 수록곡 '레드 부츠(Led Boots)', 팝적인 요소가 강했던 '플래시(Flash)'의 '피플 겟 레디(People Get Ready)', 헤비메탈을 도입했던 '제프 벡스 기타 숍(Jeff Beck's Guitar Shop)'의 '빅 블록(Big Block)', 일렉트로니카의 영향을 받은 헤비한 사운드의 '후 엘스!(Who Else!)'의 '브러시 위드 더 블루스(Brush With The Blues)'와 '블라스트 프롬 더 이스트(Blast From The East)' 등을 연주하며 그가 40년 넘게 천착해온 기타 톤과 장르 탐험의 결과물을 들려줬다.

제프 벡은 또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섬웨어 오버 더 레인보(Somewhere Over The Rainbow)'와 '에인절(Angel)'을 연주했다. 차가운 얼음 송곳 같으면서도 부드러운 제프 벡 특유의 기타 사운드를 마음껏 음미할 수 있는 연주였다.

제프 벡은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은 기타 현에, 다른 네 손가락은 비브라토 바에 댄 채 한 음 한 음 조탁하듯 전자음에 생명을 부여하며 연주했다. 퇴폐미와 세련미, 서정성이 음 하나하나에 모두 서려 있었다. 특히 제프 벡이 슬라이드 바를 이용해 기타 현을 문지르며 '에인절'을 연주할 때는 공연장에 모인 3천여 관객 모두가 숨을 죽이며 그의 손을 지켜봤다.

그의 장인 정신에 곡이 끝날 때마다 관객들은 환호했고 제프 벡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인사했다.

제프 벡은 "이 곡은 레스 폴 기타로 연주해야 하는데 지금 그 기타가 없네"라며 '하우 하이 더 문(How High The Moon)'을 펜더 기타로 연주하기도 했다. 제프 벡은 지난 1월(현지시간)에 열린 그래미 어워즈에서 작년에 숨진 기타리스트 레스 폴을 추모하며 이 곡을 연주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공연의 백미는 누가 뭐라 해도 마지막 앙코르곡이었던 '커즈 위브 엔디드 애즈 러버스(Cause We've Ended As Lovers)'였다. 제프 벡의 최고 명반으로 꼽히는 '블로우 바이 블로우(Blow By Blow)'의 수록곡으로, 그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다.

공연 막바지에 너무나 익숙한 '커즈 위브 엔디드 애즈 러버스'의 첫 음이 공연장에 울려 퍼지자 제프 벡이 이 곡을 실제로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 벅찬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이 곡은 원래 셋 리스트에는 없었지만 그는 공연 기획사의 요청과 관객의 열화와 같은 환호에 화합해 즉흥적으로 연주를 결정했다.

덕분에 객석에 불이 환하게 켜진 뒤에도 관객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텅 빈 무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사라질지도 모르는 공연의 여운을 박제하려는 듯했다.

공연장을 나서면서 "반드시 관람했어야 하는 공연이었다. 보지 못했다면 본 척이라도 해야 하는 공연이었다"라는 영국의 어느 음악전문잡지의 글이 떠올랐다. 제프 벡의 공연이 바로 그랬다.

engine@yna.co.kr